5.16 쿠데타’ 논란이 대선정국을 한 바탕 휩쓸고 지나가더니 이제는 ‘박정희 살리기’가 본격적으로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물론 예상된 일이긴 하다. 돌고 돌아서 이제 마침내 여기에 도달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그 움직임이 조직적이고 다양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 마디로 공식, 비공식 박근혜 진영에서는 ‘총력전’을 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는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페어플레이’를 저해하는 일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 2월에 문을 연 서울 상암동 소재 박정희기념.도서관을 시작으로 목하 각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정희(육영수 포함) 추모 및 기념사업은 그 시원이나 양태는 다르다고 하나 궁극적으로는 ‘박정희 살리기’라는 바다로 모여드는 작은 강물들인 셈이다. 그리고 이같은 ‘흐름’은 종국적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와 선이 닿아 있음도 완전히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지 않고서야 세간의 오해나 비난을 무릅쓰고 이 시점에서 이런 일을 강행할 리가 없지 않은가.
최근에 논란이 됐던 ‘5.16’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은 박근혜 측의 ‘완패’로 보인다. 야권이 아닌 박근혜 측에서 먼저 꺼낸 것이 가장 큰 패인이었다고 본다. 적어도 이 사안에서만큼은 박근혜 측은 공격이 아닌 방어적인 입장이기 때문이다. 선공이 아니라 야권의 공격에 방어성 ‘해명’을 했더라면 어쩌면 ‘본전’은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음이 성급했던 탓에 먼저 ‘카드’를 꺼낸 것이 상대방에게는 공격의 빌미가 된 것이다. 이는 박 캠프 참모들의 실책이 컸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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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시 주변에 건설중인 KBS 드라마 ‘강철왕’ 세트장 ⓒ KBS새노조 |
이렇듯 부적절하고 과도한 ‘작업’ 추진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박근혜 진영에 타격을 줄 것이 뻔한 일이다. 그런 사안 가운데 하나가 최근 KBS가 추진하고 있는 드라마 ‘강철왕’이 아닐까 싶다. ‘강철왕’ 제작 건을 두고 논란이 일자 KBS 사측은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고 부인하지만 이 역시 ‘박정희 살리기’, 그 결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일환이라고 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물론 KBS는 겉으로는 박태준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상은 ‘박정희 미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5.16 쿠데타’를 앞두고 박정희는 만에 하나 쿠데타 실패를 가정해 박태준에게 자신의 가족들을 부탁했다. 그 정도로 박태준은 박정희의 심복 중의 심복이었다. 그런 박태준을 얘기하자면 박정희는 기본적으로 따라서 나오게 돼 있으며, 이 대목에서 ‘박정희 미화’는 지극히 자연스런 것이다. KBS가 ‘강철왕’ 드라마 제작으로 인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고자 했다면 작년 11월 박태준이 사망했을 때 직후에 드라마를 만들어서 이미 방영을 끝냈어야 옳았다.
결국 이 사안은 국회로 불똥이 튀었다. 27일 열린 국회 문방위에서 야당 의원들은 ‘강철왕’ 제작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따졌다. 이에 대해 김인규 KBS 사장은 “만약 (대선 전에) 드라마가 제작이 완료되더라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드라마가 올해 나갈 수는 없다”며 “KBS 내부에 그 정도 자정능력은 있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대선에 영향을 끼칠 수도 없고 그런 의도도 없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런데 김 사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강철왕’은 제작과정에서 보수매체들이 앞장서 띄울 것이 뻔하며, 이는 결국 대선에 어떠한 형태로든 영향을 끼칠 것이 예상된다. 또 근자에 KBS가 보인 편향적 행태를 감안하면 내부에 ‘자정능력’이 있다고 믿기도 어렵다. 결국 드라마는 ‘박(朴)비어천가’로 흘러갈 게 뻔하며 그로 인해 야권과 언론의 비난이 쏟아질 것도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드라마 ‘강철왕’ 제작을 추진하는 측에서 이 드라마가 박근혜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 추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강철왕’이 과연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득이 될 것인가? 다시 말해 드라마에서 박정희를 미화해서 그로 인해 박근혜가 얻는 득이 클 것인가? 아니면 ‘강철왕’ 제작을 둘러싸고 논란과 갈등으로 인한 해가 더 클 것인가? 그 답은 지난해 KBS의 백선엽, 이승만 특집방송 방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세간의 평가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는 게 중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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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대학교 '박정희정책새마을대학원' 홈페이지 초기화면 캡쳐 |
한편, 오늘자 도하 언론에는 영남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름을 딴 ‘박정희 정책새마을대학원’이 2012학년도 1기 입학식을 개최했다고 보도됐다. 원장을 맡은 최외출 교수는 1977년 ‘새마을 장학생 1기’로 영남대에 입학해 이른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과외선생 5인방’ 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이미 알려진대로 영남대 정관에는 박정희가 ‘교주(校主)’로 명시돼 있을 정도로 영남대는 사실상 박정희가(家)의 소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영남대에서 박정희 이름을 딴 대학원을 만드는 건 당연하다고 여길지도 모르겠지만 이 역시 ‘때’가 문제라면 문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울릉군이 옛 군수 관사에 ‘박정희기념관’을 세우겠다고 하는 것은 애교(?) 정도로 보인다.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시절인 1962년 박 전 대통령은 울릉도를 방문해 이곳 군수 관사에 하룻밤을 묵은 적이 있다. 울릉군은 박 의장의 방문으로 울릉도 발전의 초석을 다진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박정희기념관’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울릉군은 15억여원을 들여 관사 리모델링 작업과 자료 전시를 위한 시설비, 기념조형물 제작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작게는 울릉군청의 ‘애향심’ 정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대선 가도에서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일임은 분명하다.
육영수 여사를 주제로 한 영화 제작도 이미 시작됐다. 지난 6월에 나온 보도에 따르면, 영화제작사 ㈜드라마뱅크는 육 여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를 제작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제작사측은 “박정희와 육영수의 청춘 러브스토리를 배경으로 인간 육영수의 내면의 고통과 회한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7월말부터 3개월가량 육 여사의 고향인 옥천을 중심으로 회남대교, 청남대, 합천 등지에서 촬영이 계획되어 있으며, 연말에 개봉할 계획이라고 밝혔었다. 육 여사가 사망한지 올해로 38년이 된다.
박정희는 박근혜의 ‘시작이자 끝’이다. 박근혜는 아버지 박정희의 ‘음덕(陰德)’으로 오늘에 이르렀으며 박정희가 어떤 평가를 받느냐에 따라 박근혜의 존재(혹은 위상) 역시 판가름 날 것이다. 박정희가 ‘독재자’로 평가될 경우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 될 것이고, 박정희가 ‘민족을 구원한 영웅’으로 평가될 경우 박근혜는 ‘영웅의 딸’로 평가될 것이다. 후자가 대세라면 박근혜는 부친에 이어 청와대의 주인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만약 전자가 대세라면 그는 또 한 번 대권 문턱에서 주저앉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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