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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5.16 때 박정희 ‘사상’ 의심했다?
[추적]5.16 쿠데타 직후 미국대사에게 ‘사상 검증‘ 권고 문건 발굴
 
정운현기자 기사입력  2013/01/08 [10:55]
이승만 정권 시절 육군참모총장을 지냈으며 군 원로로 불리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5.16 직후 미국 대사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최고회의 의장)등 쿠데타 주도세력 일부의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뒷조사를 해봐야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백 장군은 박 전 대통령이 좌익에 연루돼 재판을 받을 때 구명해준 ‘은인’으로 알려져 온 인물이다.
재미 탐사전문 블로거인 안치용 씨는 3일 미 국무부의 비밀전문을 한 통 공개했다. 이 문건은 5.16쿠데타 발생 8일 뒤인 1961년 5월 24일 작성된 것으로, 작성 주체는 중화민국 주재 미국대사 에버렛 드럼라이트였다. 2쪽 짜리의 이 비밀전문에서 드럼라이트 대사가 하루 전(5월 23일) 중화민국 주재 백선엽 한국대사를 만나 대화를 나눈 기록이다. 1960년 5월 31일 예편한 백 장군은 한 달 뒤인 그해 7월 주 중화민국 대사로 부임해 이듬해 7월까지 근무했다.

 5.16 직후 중화민국 주재 미국대사가 백선엽 대사를 만나 대화한 내용을 본국에 보고한 ‘비밀전문’의 첫 장(재미 안치용 씨 제공)

5.16 쿠데타 직후 미국은 친미성향의 장면 정부를 무너뜨린 박정희 소장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박정희 소장은 군부 내에서 두각을 나타낼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 이에 미국 정부는 재외공관에 5.16 쿠데타의 지도자인 박정희 장군이 누구인지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드럼라이트 미국대사가 백선엽을 만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백선엽은 박정희의 군 선배여서 박정희를 잘 알고 있는 인물로 알려졌던 것 같다. 
두 사람 중에서 나이는 백선엽(1920년생)이 박정희보다 세 살 아래이나 경력 면에서 둘은 공통점이 아주 많았다. 우선 두 사람은 모두 보통학교(초등학교) 교사 출신이다. 평남 강서 출신인 백선엽은 평양사범학교를, 경북 구미출신인 박정희는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했다. 두 사람은 사범학교를 마치고 교사로 있다가 군에 입문한 것도 똑같다. 백선엽은 만주 봉천(현 심양)에 있던 봉천군관학교 9기로, 박정희는 신경(현 장춘)에 있던 신경군관학교 2기로 입교했다.
백선엽의 ‘봉천 9기’는 박정희의 1기 선배인 ‘신경 1기’와 같은 셈인데, 나이가 적은 백선엽이 박정희보다 군관학교 입교가 빠른 데는 이유가 있다. 박정희는 사범학교 졸업 후 ‘의무복무기간’을 다 마치고 입교한 반면 백선엽은 의무복무 도중에 입교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총독부에서 이를 문제 삼자 그 때 백선엽을 도와준 사람은 만주 군의학교 출신의 군의장교 원용덕이었다. 원용덕은 이승만 정권 시절 ‘정치군인 제1호’로 불린 사람이다.  
백-박 두 사람 모두 ‘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박정희는 본과 2년은 일본 육사를 다님) 둘 다 만주군에서 복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박정희는 만주군 보병8단에서 단장 부관으로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백선엽은 자무쓰(佳木斯)부대를 거쳐 ‘간도특설대’에 배속돼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해방 당시 두 사람의 계급은 모두 만주군 육군 중위였는데, 이때의 경력으로 두 사람은 모두 ‘친일군인’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한국군에서도 출발은 백선엽이 빨랐다. 월남 후 1945년 12월 5일 설립된 군사영어학교(군영) 1기생으로 입교한 백선엽은 이듬해 2월 26일에 임관하여 국방경비대 육군 부위(중위)가 되었다. 반면 박정희는 일제 패망 후 북경으로 나와 ‘해방 후 광복군’에 잠시 몸담았다가 1946년 5월 귀국했다. 고향에서 넉 달간 휴식을 취한 박정희는 그해 9월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전신) 2기생으로 입교하여 단기과정을 마치고 1946년 12월 졸업, 소위로 임관했다.
박정희가 한국군 소위로 임관할 무렵 백선엽은 국방경비대 5연대장을 맡고 있었다. 그 때까지 두 사람은 이렇다 할 만한 인연이 없었으며, 백선엽은 박정희의 군 선배이자 상급자였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극적인 조우’를 하게 된 것은 1948년 10월 발생한 ‘여순사건’이 계기였다. 당시 군부 내 좌익분자 척결을 위한 숙군(肅軍)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는데, 백선엽은 당시 숙군 최고 책임자인 육군본부 정보국장이었다. 당시 좌익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던 박정희가 어느 날 백선엽을 찾아와 선처를 호소했다. 백선엽의 회고록 <군과 나>에 그 내용이 나와 있다.

 백선엽 회고록 <군과 나> 표지

“숙군 과정에서 중형이 선고된 군인 중 구명된 유일한 케이스가 있었다. 그는 박정희 소령이었다. 방첩대(CIC)의 수사반은 남로당 군사책인 이재복이 육군사관학교에 조직을 침투시켜 일부 중대장을 통해 생도들까지 좌익활동에 가담시킨 사실을 포착했다. 사관학교의 좌익조직 수사에서 용의자의 한 사람으로 체포된 사람은 육사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했고 당시 육본 작전교육국 과장이던 박정희 소령이었다.

숙군 5단계 작업이 완결될 즈음인 49년초 어느날 방첩대의 김안일 소령이 나에게 “박정희 소령이 국장님을 뵙고 꼭 할 말이 있다고 간청하니 면담을 해주십시오”라고 전했다. 김 소령은 아울러 박정희 소령이 조사과정에서 군내 침투 좌익조직을 수사하는 데 적극 협조했다는 점을 들어 꼭 만나봐 줄 것을 요청했다. 김 소령은 나의 승낙이 있자 곧 박정희 소령을 나에게 데려왔다. 내가 박 소령을 면담한 곳은 정보국장실이었다. 박 소령은 한참을 묵묵히 앉아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를 한번 도와주실 수 없겠습니까?”
작업복 차림의 그는 측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면담 도중 전혀 비굴하지 않고 시종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평소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약간 알고 있었으나 어려운 처지에서도 침착한 그의 태도가 일순 나를 감동시켰다.
“도와드리지요”
참으로 무심결에 이러한 대답이 나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약 20분간의 면담을 마치고 그를 돌려보냈다. 당시 숙군작업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로버츠 군사고문 단장도 간여하고 있었으므로 나는 정보국 고문관인 리드 대위로 하여금 참모총장 고문관 하우스만 대위와 로버츠 준장에게 박 소령의 구명에 관해 양해를 구하도록 했다. 동시에 이 문제를 육군본부에 넘겨 재심사를 요청했다. 육본은 채병덕 총장에 의해 형 집행정지 조치가 취해졌고, 이에 불명예 제대시키는 선에서 일이 마무리됐다.

나는 정보국 김점곤 소령과 유양수 대위에게 얘기해 군인 신분이 박탈된 박정희 소령을 문관으로 정보부에 근무토록 배려했다. (중략) 58년 그의 이름이 소장 진급 대상자 명단에 끼여 경무대에 올려졌을 때 당시 참모총장이던 나에게 경무대로부터 연락이 왔다. 곽영주 경무관(당시 대통령 경호담당)은 “박 장군의 신원조회 결과 과거 좌익활동을 했다는 기록이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나는 “박 장군에 대해서는 내가 보증한다”고 회신했다. 그는 무난히 소장에 진급했다.”

여러 증언과 문건을 통해 볼 때 박정희는 남로당에 가입해 좌익으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이 때문에 그는 김창룡의 특무대에 끌려가 모진 고문도 받았으며, 군사재판에 회부돼 사형 구형에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2심격인 고등군법회의에서 그는 ‘징역15년’으로 감형과 동시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백선엽의 증언대로 중형이 선고된 피의자 가운데 구명된 케이스로는 박정희가 유일하다. 그를 구명한 사람은 백선엽을 비롯해 정일권, 채병덕, 원용덕, 이응준 등 만주군 및 일본군 선배들이었다.
이후 박정희는 백선엽의 ‘배려’로 잠시 육본 정보국에서 문관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군에 복귀했고, 좌익 전력에도 불구하고 이후 승승장구했다. 박정희는 1953년 11월 준장으로 승진, 장군이 되었으며 2년 뒤 55년 7월 5사단장으로 나가면서 ‘은인’ 백선엽을 다시 만났다. 당시 백선엽은 육참총장을 마치고 1군사령관을 맡고 있었는데, 5사단이 1군 예하에 있었다. 그해 ‘탄신 80회’를 맞은 이승만 대통령이 전국 시찰을 하면서 5사단에도 들러 박정희 사단장과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1군사령관으로 부임한 백선엽 대장(왼쪽)이 5사단장으로 부임한 박정희 준장(왼쪽 세번째) 등 예하 사단장의 보직신고를 받는 장면

한편, 이번에 공개된 비밀전문에 따르면, 백선엽은 숙군 대상이었던 박정희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로도 박정희의 사상에 대해 ‘의심’을 떨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5.16 직후 드럼라이트 주중화민국 미국대사와 만난 자리에서 “쿠데타세력 중 청년장교 일부가 공산주의자일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이 이들의 백그라운드를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쿠데타에 참가한 청년장교 가운데는 좌익 전력자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백선엽은 쿠데타 주동자인 박정희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그는  박정희 소장에 대해 “강직하고 청렴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비밀리에 공산주의자들과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으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미국이 이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문’ 대로라면 백선엽은 1961년 당시에도 박정희의 사상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는 얘기가 된다. ‘전문’에 나타난 박정희 등과 관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박정희는 여순반란사건 때 공산주의자 간첩단에 중간수준 가담사실 밝혀졌다’
‘박정희가 어떻게 육군에 복직했는지 자세히 모른다’
‘박정희는 좌익과 공산주의자들의 온상인 대구 출신이다’
‘박정희는 강직하고 청렴하다는 평판을 얻고 있다’
‘박정희가 비밀리에 공산주의자들과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없으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미국이 염두에 둬야 한다’
‘쿠데타 가담 젊은 장교 중 일부는 공산주의자들과 연관됐을 수 있으며 미국은 그들의 백그라운드를 조심스럽게 조사해야 한다’ 

백선엽은 이날 미국대사에게 자신이 쿠데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신문에 보도된 정도로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이 박정희에 대해 아는 것은 “의례적인 것일 뿐”이라며 박정희는 ‘여순사건’ 때 ‘중간수준(MIDDLE-LEVEL)’으로 가담했으며, ‘한국의 모스크바’로 불린 대구 출신(경북 구미 출신)이라는 점을 언급했다. 특히 자신은 박정희의 재판을 관할한 군법회의의 멤버가 아니었다며 박정희가 어떻게 한국 육군에 복직했는지 상세한 내용은 잘 모르며, 그저 박정희의 경력 정도만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백선엽이 미국대사에게 건넨 말 중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하나 있다. ‘박정희가 어떻게 육군에 복직했는지 자세히 모른다’고 한 대목이다. 왜냐하면 박정희가 풀려난 후 육본 정보국에 문관으로 근무하도록 배려하고, 또 한국전쟁 발발 후 군에 복귀토록 주선한 사람이 바로 백선엽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평소 백선엽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의 좌익 혐의와 숙군 재판과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임에도 5.16 당시 미국 측에는 그런 사실을 자세히 모른다고 한 것은 왜일까? 
 
이와 관련해 해당 문건을 발굴, 공개한 안치용 씨는 “백선엽 장군이 현재 생존해 있기 때문에 백 장군은 과연 1949년에 박정희를 석방한 것이 잘못된 것인지, 1961년에도 박정희의 사상에 진실로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는지, 아니면 박정희가 다시 한 번 좌익으로 몰릴 가능성이 보이자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미국 측에 박정희에 대한 거짓 주장을 하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했는지,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를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5.16 후 장도영 최고회의 의장(왼쪽)과 박정희 부의장이 계엄사무소 앞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

한편, 백선엽은 문건에서 박정희 일파가 주도한 군부정권에 대한 평가와 당시 군부 거물들에 대한 인물평도 곁들였다. 그는 “군사정부는 쉽게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정치적, 개인적 자유는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심각하게 축소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미국정부가 방향을 바꾸게 하지 않거나 혁명적 모멘텀을 중단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는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쿠데타 지도자가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쿠데타 세력 내에서 내분이 발생, 서로 싸우게 된다면 심각한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문민정부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군사혁명을 통제할 문민지도자는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미국대사는 마지막 부분에 코멘트를 통해 “장면 정부가 한국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강력한 정부의 출범을 반기기는 하지만 혹시라도 공산주의자들이 (한국을) 전복할 길을 열어주게 될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썼다. 
인물평과 관련해 백선엽은 최고회의 의장을 맡아 쿠데타 세력의 ‘얼굴마담’ 노릇을 한 장도영 참모총장에 대해 “영리하고 능력도 있지만 때때로 용기와 결단력이 부족하다” 평가하고는 “장도영이 혁명을 이끌거나 컨트롤하거나 또 쿠데타그룹을 장악할 수 있을 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또 독립운동가 출신의 김홍일 장군에 대해서는 “애국적이고 철저한 공산주의자이기는 하지만 지력과 통찰력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는데 드럼라이트 주중화민국 미국대사도 이같은 평가에 동의했다고 전문은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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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3/01/08 [10:55]  최종편집: ⓒ 폭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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