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S 이사장에 임명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의 역사관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이사장은 얼마 전 국민적 논란이 됐던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내용을 두고 한 종편에 출연해 “감동을 받았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었다. 앞서 2008년에는 KBS의 역사 다큐프로 <한국사傳>의 ‘이승만 편’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칼럼을 일간지에 게재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 교육부장관 후보에 오르기도 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잇따라 대사를 지내는 등 한 때 진보성향 인사로 불린 그가 ‘뉴라이트’ 성향으로 변질된 데는 선대의 내력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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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KBS 이사장 |
이 이사장의 조부 이명세는 친일단체인 조선유도연합회 상무이사를 지냈는데 이 단체는 일제가 조선 유림을 침략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조직한 관변단체로 알려져 있다. 참여정부 시절에 활동했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이명세의 친일행위는 매우 ‘적극적’이고 또 ‘자발적’이었다고 나와 있다. 보고서는 이명세의 구체적 친일행적과 관련해 △조선유도연합회의 상임참사·상임이사를 역임했으며 △‘황도유학’을 주장하고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찬양했으며 △조선총독과 정무총감의 업적을 칭송했고 △일제 말 징병제 실시까지 찬양했다고 밝혔다. 이런 정도라면 거의 1급 친일파에 드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손녀인 이인호 이사장은 조부의 친일전력에 대해 사죄는커녕 궤변을 늘어놓아 또다시 비난을 사고 있다. 이 이사장은 지난 1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조부의 친일 전력에 대해 “유학의 세를 늘려가기 위해 일제 통치 체제하에서 타협하면서 사신 것”이라며 “그런 식으로 친일을 단죄하면 일제시대 중산층은 다 친일파”라고 밝혔다. 거듭 지적하지만 그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궤변에 불과할뿐더러 또 하나의 역사왜곡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조부가 유학의 세를 늘리기 위해 민족반역 행위를 한 것이 친일의 명분이 될 수 없다. 학교를 지키기 위해 친일을 했다는 김활란의 주장이나 민족 대다수를 살리기 위해 친일을 했다는 춘원 이광수의 주장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데 이는 친일파들의 전형적인 자기변호 논리이다. 대표적인 직업적 친일파로 불리는 조병상은 두 아들 가운데 장남은 지원병, 차남은 학도병으로 팔아먹은 파렴치한 자이다. 그는 일제말기 조선인 대학생들에게 학병 권유 연설을 하면서 일본군에 가서 전술을 배워두면 장차 조국을 위해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은 바 있다. 이 이사장이 ‘중산층’ 운운한 것은 더 가증스런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일제 때 세금 내고 아이들 학교 보내고 일제의 강요로 마지못해 창씨개명한 ‘중산층’을 모두 친일파로 몰고 있는데 이 역시 친일파들의 전형적인 수법의 하나인 ‘공범론’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전 국민을 친일파로 몰아 그 속에 숨으려는 술책인 것이다. 그러나 해방 후 반민법에서 규정한 친일파는 이같은 ‘중산층’이 아니라 이 이사장의 조부처럼 ‘적극적’이고 또 ‘자발적’으로 친일을 한 사람들로만 한정했었다. 즉, 반민특위 같은 정부기관이나 역사학계에서 친일파를 규정하면서 말단 ‘생계형 가담자’까지 친일파로 몬 적은 없다는 사실이다. 보수논객 복거일 씨도 2002년 이와 유사한 주장을 펴 비난을 산 바 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우편향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들이 줄줄이 정부요직을 꿰차고 있다. 국가보훈처, 국사편찬위원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이어 대표적 공영방송인 KBS 이사장 자리까지 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문제는 이들이 수장으로 있는 기관에서 주도하는 나라사랑교육, 역사교과서, 방송 제작 및 심의행위가 또 하나의 역사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이사장의 경우 방송분야 전문성은 차치하고라도 친일 및 독재미화로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던 ‘교학사’ 교과서를 적극 지지하고 엄호하는데 앞장섰던 인물이어서 공영방송 KBS의 이사장으로서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 보수언론에서 이 이사장의 역사관에 대한 비판을 두고 ‘신연좌제’ 운운한 것은 ‘동업자 봐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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