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명량해전 유적지 해남 우수영에 반란수괴 범죄자 전두환 흔적
우수영 성곽 북문 쪽에 전두환 지시로 1982년 군부대에서 관정 팠다는 내용의 동판과 관정 아직도 버젓이 존재
[폭로닷컴/신안신문/목포뉴스]
정유재란 당시 조선 수군이 왜군을 물리친 세계 해전사에 가장 위대한 승리를 거둔 울돌목 명량해전(鳴梁海戰)에 빛나는 역사적인 유적지가 바로 우수영(右水營)이다.
조선수군 판옥선 13척으로 300여척이 넘는 왜군들의 적선 중에서 30여척은 격침시키고 100척 이상은 대파, 3,000명 이상의 왜구들을 죽이니 멀리서 지켜보던 왜군들이 크게 두려워하며 도망갔고, 다시는 전라도 바다를 침범하지 못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 역사적 고증을 통하여 새롭게 그려 본 新명량해전도-조국일 작 © 신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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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량해전은 이순신 장군께서 울돌목 조류의 흐름을 이용한 철저한 전략과 계산 하에 이루어진 기적 같은 승리였고, 장군께서도 명량해전의 승리를 천운(天運)이라고 기록하셨다.
만일 이순신 장군께서 명량에서 왜구들을 무찌르지 못하였다면, 우수영을 통과하여 서해바다로 올라온 왜구들이 영산강 유역의 호남 식량을 약탈했을 것이다.
이어 한강을 따라 한양을 공격하고, 대동강을 따라 평양을 공격하고, 압록강을 따라 명나라의 진입을 막았을 것이니, 조선은 일본에게 점령당하고 지금 우리민족의 역사는 사라졌을 것이다.
이처럼 왜구들에게서 우리민족의 운명을 구한 충무공과 선조들의 불멸의 넋이 기려있는 민족의 성지 우수영에 반란수괴 범죄자 전두환의 흔적이 남아있다.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은 마을 자체가 전라 우수영 수군의 군영이 자리 잡고 있었던 역사적인 유적지이다.
그런데 우수영 성곽 북문 쪽에 전두환이 지시하여 1982년 9월 10일에 군부대에서 관정을 팠다는 내용의 동판과 관정이 아직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그 위치 또한 이순신 장군께서 왜놈들이 쳐들어오는지 먼 바다를 감시했다는 산 이름인 망해산(望海山) 입구 쪽에 있다.
▲ 망해산의 망해루(望海樓)를 올라가는 입구에 자리 잡은 전두환 관정 © 폭로닷컴/신안신문/목포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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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영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광주시민들을 학살하고 대통령에 오른 전두환이가 지방 순시를 위해서 헬기를 타고 우수영 상공을 지나가다가 ‘저 곳에 우물을 파라’ 고 지시해서 지역 군부대에서 관정을 팠다는 것이다.
그리고 관정에 부착되어있는 동판의 내용 중 일부는 당시 군사반란독재자 전두환을 극존칭 하는 글이라서 더욱 불편하다.
▲ 전두환의 업적을 칭송하는 동판 © 신안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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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판에 새겨진 글에는 ‘이 관정은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분부에 따라 육군 2626부대가 착정기를 지원하여 군,관,민이 힘을 모아 설치한 시설임’ 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 당시에는 언론들이 땡전뉴스 (9시 뉴스 ‘땡’ 하면 전두환 각하께서는 이라고 시작되는 당시 언론의 행태를 풍자한 것) 라고 할 정도로 침이 마르도록 전두환을 찬양하던 터라서 해남 우수영에 관정 하나 판 것도 각하의 분부에 따랐다고 했다고 동판에 새겼으니, 지금 세상 같으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다.
그런 왕정시대에나 있을 법한 범죄자 전두환이라는 이름 석 자가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량해전의 정기가 서려있는 전라 우수영 성지에 새겨져 있다는 것에 통탄할 일이다.
왜적의 침입을 감시했던 우수영 망해산(望海山)의 정기를 누르고 있는 전두환이의 관정과 동판이 민족정기를 훼손한다는 필자의 주장이 너무 억지인가?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전두환이 아직도 용서를 빌지 않았는데, 전남 해남 문내면 우수영 서상리 북문에 박혀있는 학살자의 흔적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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