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특별수사팀이 꾸려졌다. 경찰은 광역수사대와 보안수사대 인력 72명을 차출해 수사본부를 설치했고, 검찰도 공안부를 중심으로 40여명의 수사팀을 구성했다. 미국 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씨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와 김씨의 과거행적과 범죄와의 관련성, 피습사건의 배후세력 등을 규명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국가보안법’과 ‘배후세력’에 방점 찍는 검·경
증거물도, 혐의점도 없는데도 수사 착수 단계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얘기를 먼저 꺼낸내며 김씨의 행적과 주장이 북한에 대한 고무·찬양에 해당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단독범행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들 두고 ‘배후세력’을 색출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할 태세다. 미리 결론을 내놓고 이에 맞춰 수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새누리당도 검·경의 태도와 판박이다. 이번 사건을 ‘한미동맹의 심장을 겨눈 종북세력의 테러’라고 규정했다.“야당은 종북숙주에 대한 참회록을 쓸 때”라며 목청을 높이면서 이번 사건을 야당과 연계시키려고 안달이다. “북한과 맥을 같이하는 특정세력의 소행이 100% 확실하다”고 주장하면서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밝혀내야 한다”고 핏대를 세운다.
여당과 검·경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난 5일 피습 보고를 받은 직후 나온 박 대통령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단정한 뒤 “이 사람(김기종씨)이 과연 어떤 목적에서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단독으로 했는지 배후가 있는지 철저하게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 여당, 검찰, 경찰 모두 한목소리로 ‘사건의 배후’에 방점을 찍는다. 단독범행으로 결론이 날 경우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 지지율 급락과 국민 불만 확산 등으로 위기에 처한 박 정권에게 이번 사건은 분명 ‘호재’다. 하지만 야당과 관계있는 종북세력에 의한 테러로 몰아가야만 이 호재를 위기돌파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야당이 ‘공범’이 돼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지율이 33%까지 치솟고 있는 야당 대표의 발목을 잡지 않고서는 또 올 4월 재보선과 내년 총선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당을 ‘공범’으로 만들기 위한 음모
이번 사건을 조직적 테러로 볼 근거는 없다. 사건을 기획하고 준비해서 실행으로 옮기는 과정에 김씨 이외의 누군가가 개입했을 거라고 추측할만한 정황도 없다. 미국정부와 미국 언론들도 김씨의 범행을 “분별없는 폭력” “극단주의자들의 돌출적 행동”이라고 본다. 김씨도 기자들의 질문에 “단독범행이며 (북한과의 연관성은) 말도 안 된다”고 부인한 바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여당, 검·경은 ‘배후’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종북공안몰이’가 시작된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검·경의 입에서 그 어느 때보다 격앙된 표현이 나온다. 정국위기 가운데 ‘호재’를 만났다는 흥분과 기대, 여기에 섣부른 종북몰이로 혹여 역풍을 만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까지 뒤섞인 복잡한 반응이다.
미국정부로서는 ‘종북몰이’가 싫을 리 없다. 티내며 좋아할 수는 없지만 내심 반기지 않겠는가. 미국정부가 한국내 보수우파와 손잡과 야당과 진보진영을 공격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 겉으로는 한국정부의 ‘종북몰이’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 수는 없다. 대신 한 걸음 물러서서 ‘종북몰이’라는 굿판을 보면서 떡이나 먹으려 들 것이다.
역풍 감수하고 대대적 종북몰이 감행할 수도
역풍 위험을 감수하고 종북몰이에 대대적으로 나설 수도 있다. 피습사건에 대한 송구함과 미안함을 어떤 식으로든 미국정부에게 표현해야할 청와대이기 때문이다. 우선 ‘종북몰이 굿판’이라도 신명나게 벌여 미국정부의 심기를 달래주려 할지 모른다. 이 경우 무리한 종북몰이가 자행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정부는 느긋하게 ‘굿판’을 감상하면서 ‘피습에 대한 보상’을 제시할 기회를 엿볼 것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정부로서도 활용 가치가 높은 ‘호재’다.
야당은 자칫 박 정권이 벌이는 굿판의 돼지머리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잘 대처해야 한다. 전략과 지혜가 요구된다.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얘기를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족제비에게 잡힌 박쥐가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족제비는 “나에게 모든 새(鳥)는 적”이라고 말하며 거절했다. 그때 박쥐는 “나는 새가 아니라 쥐”라고 말해 겨우 풀려난다. 얼마 뒤 그 박쥐는 또 다시 족제비에게 잡혔다. 박쥐가 애원하자 족제비는 “나는 쥐에게 특별한 원한이 있다”고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박쥐는 “나는 쥐가 아니라 박쥐”라고 말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박쥐를 야당으로, 박쥐를 잡아먹으려는 족제비를 여당이라고 보면 무슨 얘긴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하지 않을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다행스럽게도 새정치연합은 이번 사건이 터지자마자 ‘박쥐의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리퍼트 대사를 찾아 위로했고, 86세대인 안희정 지사와 정청래 의원은 “어떤 이유로든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으며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종북세력과의 선긋기에 나섰다.
종북몰이 ‘굿판’ 희생양 되지 않으려면
여당은 어떻게든 야당을 종북세력으로 낙인찍으려 할 것이다. 이런 판국이라면 야당에겐 여당에게 덜미를 잡히지 않는 게 상책이다. 해명하고 대응하면 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얘기 한토막이다.
고양이가 닭을 잡았다. 고양이는 닭을 잡아먹을 구실로 한 밤중에 울어서 잠을 자지 못하게 한 죄를 물었다. 그러자 닭이 해명했다.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기위한 배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양이는 “변명은 그럴 듯하지만 배가 고프니 굶을 수 없다”며 닭을 잡아먹었다.
고양이를 여당, 닭을 종북 덫에 걸린 야당이라고 치자. 야당이 ‘우리는 종북이 아니다’라고 아무리 해명해도 이미 닭을 잡아먹기로 한 고양이의 야욕을 꺾을 수 없다는 얘기다. 잡히지 않는 게 상책이다. 종북이라는 덫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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