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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출신 TK-사법부 PK 출신들의 ‘합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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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13] ‘김현희 신화’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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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국 진실의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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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기사입력 |
2012/08/20 [07: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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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건에 깊이 개입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몇 가지 공통점이 두드러진다. 수사의 주체들은 모두 TK와 PK 출신들이 도맡았다. KAL858기 사건과 김현희의 신화를 썼던 인물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KAL858기 사건에 숨겨진 의도와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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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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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사건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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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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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14기, 하나회
전두환 정권시기
국보위대책위원(1980년)
사회정화위원장(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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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안기부장
민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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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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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전두환 국군보안사 사령관의 부하로서
보안사 감찰실장.
대구시장(1985년)
안기부장(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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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제 1차장으로서
KAL기 사건 수사 총지휘자 및 사건 발표자
(1988년 1월 15일)
민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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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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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회, TK
노태우 대통령 만들기 비밀
조직 월계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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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특보,
민정당, 민자당.
6공화국 황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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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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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뉴라이트 전국연합 의장.
안기부 제 1 차장(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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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부 대공 수사국장,
박종철 고문사건 은폐 개입,
전두환 정권하에서 숱한 고문 전력과 인권 유린 행위 자행. 한나라당(1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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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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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1980년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승진, 1985년 전두환이 창당한 민정당 입당,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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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처장관으로서 김현희 사면 발표한 인물.
전두환 광주 5.18 항쟁 당시
조선일보 정치부장으로 구국의 영웅 전두환 찬양 주도.
박근혜 친박계 원로 7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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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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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 박근혜 친박계 원로
7인회, 검찰 공안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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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사면시 검찰총장,
6공 법무부 장관,
유신 정권시 중앙정보부,
대공 수사국 부장,
신한국당, 한나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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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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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K, 육사 12기, 하나회,
월계수회, 88서울 올림픽
조직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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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희 수사시 안기부장,
김현희를 개신교로
인도한 인물,
| KAL858기 사건과 하나회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나회는 박정희 정권 시기인 1963년에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등 육사 11기생들이 주도로 비밀리에 결성한 군내부 조직이고, 육사의 각 기수를 내려오면서 주로 경상도 출신 소장파 장교들을 대상으로 회원을 모집한 단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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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사건은 '하나회'와 깊이 관련돼 있다. 사진은 '하나회'의 리더 전두환 전 보안사령관 | 1979 년에는 육사 11 기, 12 기생을 중심으로 전두환 신군부로 발전하여 12,12 군사 반란, 5,17 쿠데타를 주도하고 5,18 광주 민중항쟁에서 수많은 민간인 대량 학살을 주도하였다. 하나회 회원들은 육군 본부, 보안사령부 내사과 등의 진급 담당 요직을 점거하여 승진이나 자리이동때 선배가 후배를 밀어주는 식으로 군내 주요 요직을 독점하였다. 1973 년 강창성 보안사령관이 조사한 하나회는 (1) 정규 육사 출신을 기본 정원제로 가입 (2) 회원 다수는 영남 출신이 점한다. (3) 비밀 점조직 방식으로 조직하되 가입시 조직에 신명을 바쳐 충성할 것을 맹세한다. (4) 고위층으로부터 활동비를 지급받거나 재벌로부터 자금을 징수한다, (5) 회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진급 및 보직 상의 특혜라고 밝혀졌다. KAL858 기 사건 조사를 주도했던 안기부 3 인방 모두가 '하나회' 출신들이다( 안무현, 이상연, 박철언). 하나회 출신들의 TK 와 PK 출신 사법부 총수들이 적극 협력 지원하였다.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부역했던 인물들이 모두 KAL858 기 사건에 개입하고 활용하여 전두환 정권 말기를 안정적으로 마감케하고, 육사 11 기로서 하나회 출신이며 신군부 세력인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전두환 부역자들에 의해 헌정된 사건으로 보인다. 1987 년 전두환 정권 말기를 맞아 국민들은 7 년 만에 힘겹게 얻은 직선제 민주주의를 갈망하며 군사 정권의 종말과 새로운 정권 교체의 꿈을 가졌지만 KAL858 기 사건이 발생하며 또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1987 년 대선 패배로 국민들은 좌절했고, 민주화 세력들은 사분오열 되면서 심각한 '멘붕'과 '트라우마'에 빠지게 되었다. 이로써 KAL858 기 사건에 대한 관심은 식어갔고, 진실규명은 방치되었던 것이다. 13 대 대선 전에는 언론을 총동원하여 이 사건을 특종기사로 방대한 지면의 기사로 도배질을 하더니, 노태우 대통령 당선 이후 방송과 언론은 국민적 관심에서 사라지도록 기사 분량을 대폭 축소시켰다. 전두환은 충분히 활용했고, 성공했으며 만족스러운 목적을 이루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이 고도의 전략으로 민심과 여론을 조작하였음을 엿볼 수 있다. 언론을 완전 장악한 5, 6 공 정권은 국민여론과 사회적 분위기를 정권의 의도와 목적에 따라 컨트롤이 매우 수월하였다. 노태우 당선 이후 2 년 동안 이 사건 보도는 무덤에 묻혔다가 김현희 사면 이후부터 다시 김현희를 재등장시키면서 새로운 활용 카드를 꺼내들었다. 안기부는 김현희를 반공강사와 독실한 크리스찬으로 변신시키고 미녀 테러리스트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안기부 직원으로 채용되어 7 년 동안 7 백여 차례의 반공 및 신앙강연을 한 김현희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반공 바이러스를 전국민들에게 퍼뜨리는 일이었다. KAL858 기 사건의 하나회와 영남 권력의 인맥도를 분석해 볼 때 안기부는 전국민을 냉전 수구세력의 노예로 만드는데 매진하면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TK 와 PK 세력 중심의 '영남왕국' 건설을 교묘하게 진행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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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2/08/20 [07:14] 최종편집: ⓒ 폭로닷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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