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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명예회복’이 ‘역사 바로잡기’인가
검찰, 박근혜 당선인에 무혐의 처분... “역사전쟁 전개 우려” 지적도
 
폭로닷컴편집국 기사입력  2013/02/05 [08:59]



(* 시사 블로거 오주르디 님이 4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필자의 양해를 얻어 소개합니다...편집자) 




많은 사람들이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 씨가 5.16군부의 폭압에 의해 상당한 재산을 강탈당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고인의 유족들과 그를 알고 있는 다수의 증인들도 한결같이 그렇게 주장하고 있으며, 과거사를 다루는 학자들의 견해와 사법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판단도 마찬가지다.



“김지태는 부정축재자”...박근혜 손들어 준 검찰

하지만 강탈자의 딸인 박근혜 당선인의 생각은 완전히 다르다. 대선 당시 정수장학회 강탈 논란이 일자 일반적인 인식과 동떨어진 주장을 폈다. 50년 전 5.16군부가 고인에게 씌운 혐의 내용을 그대로 읽은 거나 다름없는 내용이었다.


“당시 김지태씨는 부정부패로 많은 지탄을 받았던 분으로 4·19 때 부정축재자 명단에 오르고, 집 앞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시위할 정도였다. 5·16 때 부패혐의로 징역 7년형을 받았는데 처벌을 면하기 위해 먼저 재산 헌납의 뜻을 밝힌 것이다.” (박근혜 후보, 2012. 10. 21)

박 당선인의 판단 기준이 ‘5.16 군부와 아버지’라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준 대목이다. 강탈이라고 인정한 법원 판결까지 뒤집는 발언도 나왔다. 그러자 고인의 유족들은 ‘박근혜 망언’을 규탄하며 지난해 11월 서울중앙지검에 당선인을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했고, 검찰은 박 당선인에 대한 단 한 차례의 소환도 없이 진술서 한 장만으로 조사를 끝냈다.

결과는 무혐의. 지난 3일 검찰은 “사자 명예 훼손은 허위사실을 적시했을 때만 적용되는데 박 당선인의 경우 당시 발언을 허위 사실로 보기 어렵다”며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박 당선인의 입장이 우선 고려된 셈이다.






‘역사적 사실’보다 ‘당선인 입장’이 우위?



5.16과 유신독재 등에 대한 박 당선인의 과거사에 대한 입장은 확고하다. 과거사 얘기만 나오면 모든 판단 기준은 아버지 박정희에 맞춰진다. 박 당선인에게 ‘역사적 사실’은 박정희의 말과 행동인 셈이다. 그래서 5.16 독재군부가 고 김지태 씨에게 씌운 혐의를 그대로 사실로 인정하는가 보다.

박 당선인 측은 고인을 비난하기 위해 투트랙 전법을 구사한다. 박 당선인은 고인을 '부패한 기업인'이라고 비난할 뿐 '친일행위자'로 몰아세우지 않는다. 일제에 혈서를 쓰고 충성을 맹세한 아버지 박정희의 엄청난 친일행각을 의식해서일 게다. ‘김지태는 친일행위자’라는 비난은 박 당선자 입이 아닌 새누리당의 몫이다.





고 김지태

친일행위자 김지태? 틀린 주장이다. 사실을 비틀고 또 비틀어 말하는 거다. 고인은 친일이 아니라 반일 운동을 했던 청년이었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 했던 양심있는 기업인이었으며,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투쟁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이었다. 4.19혁명의 시작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동척 부산지사 경력이 ‘김지태는 친일’이라는 당선인 측 주장의 근거가 된다. 고인이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20세부터 5년간 동척에 근무한 건 사실이다. 상업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 동척 등 일제가 설립한 회사에 우선적으로 취업되는 게 관행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동척 근무시절 그의 행각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본말 뒤집는 저들... 김지태는 반일운동가, 민주운동가


일제의 회사에 다니면서도 ‘반일운동’을 했던 고인이다. 이점에 대해 당선인 측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 고인의 큰 외삼촌은 만주 독립군 간부였고 그에게 영향을 받아 1927년에 설립돼 전국 각지에 지부를 둔 독립운동단체 '신간회'의 말단 조직인 소년단에서 활동했다. 이 단체가 조선청년총동맹에 흡수된 뒤에는 부산지부 간부직을 맡기도 했다.




출처: 김승 著 '1920년대 경남지역 청년단체 조직과 활동'


고인은 동척 근무 시절 현재 부산시 동구 좌천동 정공단 옆에 ‘부산정묘학교’라는 야간학교를 설립하고 청소년들을 모아 밤 시간을 이용해 신학문을 가르쳤다. 또 조선청년총동맹 간부 시절에는 반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부산경찰서에 구속되기도 했다. ‘김지태 친일행위자’라는 주장은 본말은 뒤집는 망언이다.




▲ 옛 동척 부산지사 자리

부유하고 개화된 집안에서 태어난 고인은 지기(紙器)사업과 주철사업에 손 대 큰돈을 번다. 중일전쟁과 2차 대전 특수 덕분이었다. 삼화고무와 조선견직을 인수하고 사업을 키우면서 1950년 무소속으로 제2대 민의원에 당선되 정계에 진출한다.

자유당 소속으로 제3대 민의원을 지내던 1956년,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당에서 제명당했다. 1958년 조봉암 선생에게 간첩혐의를 씌워 사형을 선고하자 조 선생을 비호하는 글 ‘존엄과 비판’을 직접 써 자신이 설립한 <부산일보>에 게재하기도 했다.

4.19혁명도 그의 손에서 시작됐다. 얼굴에 최류탄이 박힌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되자 이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곳이 고인이 사주로 있던 <부산일보>였다. 열사의 주검을 대서특필한 뒤 그가 설립한 또 다른 언론사인 <부산MBC>에서 실황중계 하듯 보도가 되도록 한 것도 바로 고인이었다.




▲ 부산일보 허종 기자가 찍은 고 김주열 열사의 주검. 4.19혁명을 만들어낸 사진이다(1960.4.11)



강탈, 보복, 중정을 통한 감시...집요했던 독재정권



이승만 정권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이었던 고인을 줄곧 ‘부정축재자’라고 몰아세우며 핍박했다. 5.16군부는 이승만 정권이 정치적으로 핍박하기 위해 씌운 누명을 이용해 고인으로부터 막대한 재산을 강탈했다. 1961년 12월 5억4000만환을 뺏은 군부는 그것으로 부족했던지 1962년 4월 간경화로 일본 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인의 집에 중정요원을 보내 집에 있던 반지와 카메라가 밀수된 것이라며 고인의 부인 송혜영 씨를 연행했다. 고인이 귀국하고 나서야 부인이 풀려났다.


부일장학회, 부산일보, 부산MBC, 부산 대연동 일대(부산 벡스코와 해운대 관광호텔 자리)의 땅 10만 평을 강탈하기 위해 꾸민 음모였다. 군부는 헌납을 강요했고 고인은 수갑을 찬 채 포기각서에 서명했다. 석방된 뒤에 헌납을 이행(기부승락서)하겠다고 하자 군부는 양도서류를 디밀며 협박했고, 결국 기부승락서에 도장을 찍은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유족들은 쿠데타 거사자금 500만환을 요구하는 박정희의 부탁에 고인이 응하지 않은 것 때문에 앙심을 품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독재정권은 집요했다. 1976년 고인이 자서전 <나의 이력서>를 펴내자 중정이 개입한다. 자서전 표지 뒤에 있던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고인의 휘호와 부일장학회가 언급된 부분을 문제삼아, ‘권불십년’은 ‘성업백년(盛業百年)’으로 바꿀 것과 부일장학회의 자진헌납을 암시하는 내용을 추가하는 중정의 압박에 의해 자서전이 재출간 됐다는 게 유족과 ‘자명기념사업회’ 측의 주장이다. 고인은 중정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진헌납’과 배치되는 의미의 단어인 ‘좌절’이라는 말을 빼지 않았다.





▲ 고인의 자서전. '자진헌납'을 암시하는 내용을 넣으라는 중정의 압박에 시달렸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당선인이 고인을 '부정축재자'로 몰아세우자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가 이색적인 제안을 한다. “박근혜 후보는 팩트 자체를 모르고 있다”며 얘기만 지어내지 말고 박 당선인이 직접 참여하는 공개 토론을 통해 무엇이 사실인지 밝혀보자고 주장했다. 물론 박 당선인의 묵묵부답으로 토론회는 없던 게 돼 버렸다.



‘박정희 명예회복’이 ‘역사 바로잡기’라는 당선인

박 당선인의 측근들은 “박근혜가 정치를 하는 건 아버지의 명예 회복을 위해서다”라고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박 당선인 스스로도 박정희의 명예회복이 곧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말한다. 박정희를 명예롭게 만드는 것이 바른 역사라는 식의 황당한 주장을 오래전부터 펴 왔다. 아래는 1989년 4월 MBC에 출연해서 한 말이다.



“5.16과 유신은 매도당해 왔다.”

“부모님에 대해 잘못 된 것 하나라도 바로잡는 게 자식의 도리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했던 사람이라면 얘기해야 하며 어떤 비난을 받더라도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게 정치다....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그런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다.”


검찰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을 비틀어 박 당선인의 ‘입맛’에 맞는 결정을 내렸다. 검찰이 박 당선인을 무혐의 처분했다는 것은 고인이 ‘부정축재자일 수도 있다’라는 얘기가 된다. 폭압에 못이겨 재산을 강탈당한 피해자가 가해자의 딸에 의해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박정희의 명예가 회복되고 그 이름이 영화롭게 되어야 역사가 바로서는 것이라는 ‘박근혜식 역사인식’이 제18대 대통령이라는 권력의 힘에 편승에 날개를 펴려 하고 있다. 과거사가 ‘박정희 명예회복’이라는 기준에서 다뤄지는 ‘암흑기’가 도래한 것이다. 아래는 ‘진실화해위원장’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의 말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보다 과거사에 관련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다. 모든 것을 ‘박정희 명예회복’이라는 기준에서 다룬다면 역사전쟁이 전개될 우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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