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7일, 박근혜 대통령은 새누리당 국회의원 회동에서 철도 민영화에 대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몸에 끼기도 하고 불편하다, 몸에 맞는 옷으로 바꿔내야 한다.'면서 '경제 패러다임을 지금 시대에 맞게 변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문구는 사실 42년 전인 1972년에 TV에 이미 나왔던 표현입니다. 10월 유신헌법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TV에서는 몸에 맞지 않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바지가랑이에 발이 걸려 넘어지는 영상이 반복해서 나왔습니다.
이는 '현재 헌법이 국민 수준에 맞지 않은 큰 옷이다. 그래서 몸에 맞는 유신헌법에 찬성 투표를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유신헌법 국민투표 홍보 광고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주장하는 '몸에 맞는 민영화'와 박정희가 주장했던 '몸에 맞는 유신헌법' 과연 타당성 있는 주장이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개발독재, 그 수혜자는 국민이 아닌 재벌'
유신헌법은 단순히 헌법을 바꾼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회,경제,문화 체제를 모두 변화시켰습니다. 특히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만들면서, 개발독재를 통해 이룩한 경제적 혜택의 수혜자로 국민이 아닌 재벌을 선택했습니다.
유신헌법 개정이 있기 전인 1972년 8월 3일, 박정희는 일명 '8.3조치'라고 불리는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대통령의 긴급명령 제 15호'를 발표합니다.
'8.3조치'는 대기업이 빌려 쓰고 있는 고리 사채를 동결하여 대기업의 자본과 기업활동을 도와 경제 성장을 발전하겠다는 명분을 외부적으로는 내걸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8.3조치'는 박정희 정권과 기업유착의 정점을 찍는 재벌을 향한 엄청난 특혜였습니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8.3조치'를 위해 2000억원의 특별 금융채권, 200억원의 긴급 금융, 500억원의 합리화 자금을 투입했습니다. 이 자금을 통해 대기업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기존의 사채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자금을 사채가 아닌 은행에서 대출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기업은 36.5%의 고금리 사채나 시중은행 대출금리 18%의 반도 안 되는 8%로 대출을 받아, 이자 지출이 3분의 1로 줄었습니다. 또한, 원금상환 일정이 최장 8년 뒤로 유예되어 대기업 입장에서는 지출이나 현금 유동성 면에서 속칭 '복권'을 맞은거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기업의 건실한 운영을 위해 이런 혜택을 줬으니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기업들의 사채를 신고받고 보니, 신고사채의 3분의 1에 가까운 돈이 사채업자의 돈이 아니라 기업주의 돈이었습니다. 즉 기업주가 자기 돈을 자기 소유 기업에 빌려주고 고리 사채 대금업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체 사채의 60%를 대기업과 공기업이 사용했으며 대기업의 타자본 의존도가 79.5%였다는 사실은 어떤 시스템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업주의 방만하고 불법적인 경영방식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사채 때문에 기업 운영이 힘들다고 했던 기업주들이 실제로는 자신들의 돈을 불리기 위해 위장사채를 운영했으며, 박정희는 이들을 위해 엄청난 특혜를 베푼 것입니다.
' 독재자는 특혜를 재벌은 정치자금을'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경부고속도로를 보면서 박정희가 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의 도로용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작된 강남개발은 '토건족'의 시작이자, 정치자금을 모으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1970년 평당 5100원에 사들였던 강남땅 18만평을 대통령 선거가 있던 1971년에 1만6천원에 팔아 20억 원의 정치자금을 만들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잠실아파트를 비롯한 매립사업 등을 진행하면서 기업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챙겼습니다. 이렇게 박정희는 대기업에 특혜를 주고 조성된 정치자금을 유신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통치자금으로 활용했습니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지게 된 동기 중에는 경제 성장에 따른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박정희는 개발독재를 하면서 '조금만 참으면 우리도 잘살 수 있다'고 국민에게 약속했지만, 실제 그 혜택은 오로지 정치자금을 주는 재벌에게만 돌아갔습니다.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 아무리 외쳐도, 박정희는 이런 애타는 목소리를 간첩과 용공조작으로 몰아갔고, 이런 억압적인 독재는 결국 유신반대 운동과 함께 뭉쳤던 것입니다.
' 진짜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자칭 보수들'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이 계속 나옵니다. 그러나 실제 박정희가 벌였던 '8.3조치'는 반 자유민주주의에 해당합니다.
고금리 사채이지만, 사채도 엄연히 당사자 간의 계약입니다. 이런 개인의 계약에 정부가 나섰다면 '사유재산권 침해'가 됩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외쳤던 사람 그 누구도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입도 뻥끗하지 못했습니다.
▲유신헌법 국민투표 전에 나온 유신지지 광고. 출처:경향신문
10월 유신이 시작되면서 대한민국의 모든 사회,경제,문화,교육 등에는 유신이라는 말이 붙었습니다. 유신이 빠지면 간첩이 되는 세상이었습니다.
'구국의 유신이다. 새 역사를 창조하자' '10월 17일 유신은 김유신과 같아서, 삼국통일 하듯이 평화통일 이루네' ' (유신헌법 국민투표) 잘 살기 위한 국민투표' '유신은 한국적 민주주의, 우리 땅에 뿌리박자' '10월 유신은 구국의 길' '10월 유신은 민족적 과업이다'
10월 유신이라는 말 앞에 개인은 존재하지 않았고,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로 대한민국은 바뀌었습니다. 이런 역사 앞에서도 여전히 자칭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외칩니다.
1972년 11월 21일 유신헌법 국민투표가 있고 다음 달인 12월에 대한민국 제8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접 선거를 통해 99.9%의 찬성으로 박정희가 다시 대통령이 됐습니다.
박정희는 유신으로 모든 것을 잘살게 해준다고 했지만, 그 혜택은 재벌과 박정희에게만 돌아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민영화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민영화가 지금 시대에 맞는 옷이라고 주장하는 모습은 아버지 박정희의 논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다른 사람이 잘살게 된다면 그것은 범죄에 불과합니다.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해 시간이 흘러도 범죄인지 모르는 대통령에게 2014년에 걸맞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르쳐줄 사람을 청와대는 찾아야 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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